전국시대 법가 사상가 한비자(韓非子)는 인간과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데 탁월했다. 그의 저서 <한비자>에는 짧지만 오래 곱씹게 되는 우화 하나가 나온다. 제나라 왕과 객(客)의 대화다.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우냐는 왕의 질문에 객은 ‘개와 말(犬馬)’이라 답했고, 무엇이 가장 쉬우냐는 질문에는 ‘귀신과 도깨비(鬼魅)’라 답했다. 개와 말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눈앞에서 똑똑히 보는 가축이기에 조금만 다르게 그려도 금방 탄로 나지만, 귀신과 도깨비는 형체가 없어 아무렇게나 그려놓고 윽박질러도 반박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事實)을 사실대로 그리는 것은 무섭고도 어려운 일이다. 털끝 하나만 잘못 그려도 손가락질과 비판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본 적도 없는 도깨비를 그려놓고 "이것이 도깨비다"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쉽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문득 이 한비자의 우화가 떠오른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순한 노선 경쟁을 넘어선다. ‘뉴이재명’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주류 세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부 인사들은 과거 자신들이 걸어온 정치적 궤적과 언행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피한 채, 현재의 진영 논리에 기대어 새로운 서사를 쓰려고만 한다.

정치는 전향할 수 있다. 사람도 변할 수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그러나 변화를 말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조건이 있다. 바로 '과거에 대한 정직함'이다.
정치인은 국민 앞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과거의 발언과 선택, 몸담았던 자리와 행적은 이미 수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온갖 모순과 말 바꾸기가 쉽게 탄로 나는 시대다. 그런데도 국민의 기억을 얕보며, 과거와 현재 사이의 최소한의 설명과 성찰도 생략한 채 '새로운 이름표' 하나로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눈앞의 개와 말을 지워버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도깨비를 그려내는 기만과 무엇이 다른가.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계파의 이합집산도, 기묘한 정치적 조어(造語)도 아니다. 내란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민생을 회복하며, 무너진 제도를 바로 세우는 책임 정치다.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민생 입법을 연일 호소하는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권력 주변의 아전인수식 해석 경쟁이 아니라 국민 삶의 무게를 나누는 일이다.
한비자의 우화는 오늘날에도 서슬 퍼렇게 유효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그리는 것은 어렵다. 조금만 틀려도 매서운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 있는 정치가일수록 행보가 신중하고 무거워진다. 반면 실체 없는 귀신을 그리는 일은 쉽다. 권력의 입맛대로 포장하고 이름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 사실(事實)을 외면한 채 귀신 그림이 되는 순간, 국민은 결국 등을 돌린다. 개를 개라 하고 말을 말이라 하는 것, 그 단순하고도 준엄한 정직함에서 비로소 정치의 신뢰는 시작된다. 그것이 사라진 정치는 아무리 화려하게 분칠해도 종국에는 국민의 엄중한 심판 앞에 그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